[재미난 手作] 눈과 감성을 열어줄 공간 / 이경희, 전통자수공예가

너는 수를 차분하게 잘 놓는구나.” 중학교 가정 실습 시간에 들었던 선생님의 이 한 마디가 약대 박사라는 타이틀을 버리고 전통자수가로의 길로 갈 수 있게 해준 첫걸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릴 때부터 사극을 무척 좋아하고,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했던 나의 초등학생 시절의 꿈은 막연히 디자이너였다. 그러나 꿈은 꿈일 뿐, 나에게는 디자이너로서의 재능이 없었을 수도, 아니면 그 재능을 찾지 못했을 수도 있다.

유년기에 갑작스러운 사고로 대수술을 3번이나 했던 나는, 이후 건강을 되찾으며 디자이너의 재능보다는 공부에 더 재능을 보인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흔한 중2병을 공부에 대한 재능으로 풀었던 나는 소위 말하는 엄친딸로 승승장구했다. 그렇게 신약을 개발하는 연구자로, 새로운 연구에 대한 이론 등으로 인재를 양성하는 대학 교수로서의 삶을 택하여 연구를 하는 한 평범한 대학원생이었다.

하지만 연구가로서의 로망과는 달리 대학원이라는 사회생활에서의 여러 복합적인 관계들은 그리 녹록하지는 않았다. 누군가와의 경쟁에서 이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성공을 위해서는 가족과 친구 등 인간관계에 대한 신경은 모두 잠재워야 한다고만 배웠다. 결국 나는 여기에서 그 벽을 넘지 못했고, 잠시 앞만 바라보고 달려온 나에게는 숨통을 트이게 해줄 돌파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예전에 배웠던 전통자수였다. 과거에 내가 잘한다고 칭찬받았던, ‘손가락으로 꼼지락거릴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단지 휴식을 위한 돌파구를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단순히 취미생활로 시작했지만, 첫 자수를 접하면서 점점 더 강렬해진 몰입감과 희열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나의 메말랐던 감성에 꽃을 피워냈다. 비단을 수틀에 메고 명주실을 바늘에 꿰어 어떤 기법으로 이 공간을 채울지에 대한 고민은 나를 흥분하게 했고, 색색의 실들로 공간이 메워지며 감정에 아름다움이 차게 되면서 냉철하고 이성적이었던 내가 감성적인 사람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느끼고 또 느꼈다. 그렇게 나는 전통자수가라는 예술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처음 이 길로 가겠다고 했을 때, 제정신이 아니라는 말도 많이 들었고, 주변의 걱정도 많았다. 과학자로서의 탄탄한 삶을 포기하고 예술이라는 소위 돈 안 되는 길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전통자수는 선생님에서 제자로 전수되는 작업이다 보니 체계적인 이론을 습득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나는 이를 체계화하고 싶은 목마름이 생겼다. 전통자수를 접하면서 경험했던 몰입의 즐거움이 얼마나 큰지 다른 이들과 소통하고 싶은 욕심도. 비단 위에 바늘로 그림을 그리듯 나의 감성을 담아 자수를 놓다 보면 어느새 명주실의 색에 매료되어 감정이 치유되는 매력을 느낄 수 있다. 각각의 감정에 따라 같은 도안일지라도 전혀 다른 색들의 조합과 기법으로 모든 작품에 생명을 불어넣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들에게 눈으로 즐길 수 있게 하면서 동시에 감정을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잘 전달되도록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작품에 말을 걸어본다.

요즘처럼 과학기술이 발달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스마트폰이라는 똑똑한 기계들에 사로잡혀있다. 그만큼 점점 더 소통이 사라지고 있고, 많은 사회관계 안에서 겪고 있는 스트레스를 치유할 데도 그리 많지 않다. 나는 전통자수라는 작품으로 그 감정을 치유할 수 있도록 손을 내밀고 싶다. 눈으로는 즐거움을 찾고 뇌에서는 엔도르핀이 풍부해져 인간이 더욱 인간답게 감정을 느끼고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약간은 올드하면서도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갖게 하고 싶은 것이다.

 

 

자수라는 작품을 통해서 토론도 하고 서로의 감정을 나누다 보면 어느새 나와 상대방은 들뜬 목소리로 더 많은 소통을 하게 된다. 이는 나에게 더 많은 배움의 통로가 되어준다. 어쩌면 이러한 자수의 매력 때문에 지치지 않고 계속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누구나 이 매력을 즐기게 하고 싶은 마음에. 나는 이런 감정이 온전히 실린 작품에 눈과 감성을 열어줄 누군가에게 한 걸음 더 다다다기 위해 오늘도 바늘을 잡는다.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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