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품에 안긴 귀여운 여인 _방송인 최송현

 

아나운서 출신의 배우 최송현에게 바다는 자존감을 되찾아준 고마운 존재다. 스쿠버다이버로 사는 기쁨을 전하는 그녀의 얼굴이 물결 위에 부서지는 햇살처럼 반짝인다.


2009년 개봉한 영화 <인사동 스캔들>에서 아나운서 출신 최송현(39)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스크린으로 걸어 들어왔다. 검은 가죽재킷을 입고 담배를 입에 문 채 반항기 어린 표정을 띄며 주인공의 복수를 돕는 영화 속 ‘공수정’에게서 아나운서의 단아한 이미지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KBS 공채아나운서로 입사해 간판 예능프로의 MC로 활약하며 한창 인기를 구가하던 그녀가 돌연 프리를 선언하고 브라운관을 떠난 지 1년 만이었다.


카멜레온 같은 매력을 발산하며 배우로 확실히 눈도장을 찍은 그녀는 이후로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넘나들며 활발한 연기활동을 펼쳤다. 새로운 분야에 거침없이 뛰어들어 점점 발전하는 연기력을 보여주었던 그녀는 대중의 눈에 늘 당당한 커리어우먼으로 비춰졌다. 하지만 정작 그녀는 매일 카메라 앞에 섰던 그 시절을 “가장 나답지 못한 모습으로 살았던 시간이었다”고 기억한다.


“제 자신을 점점 잃어버리는 기분이 들었어요. 항상 조연이었어도 연기하는 것 자체가 좋았는데 배우의 인지도에 따라 촬영 현장에서 대우가 달라지는 것이 느껴져 위축이 됐거든요. 또 배우는 PD나 작가에게 선택받지 못하면 연기할 기회조차 얻기 힘들잖아요. 항상 다른 사람의 선택을 기다려야 하는 내가 인생에서 진짜 조연이 된 기분이었죠."



배우로 전향한 지 3년 만에 처음 주인공으로 캐스팅됐던 일일드라마도 뜻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시청률이 저조하자 스토리가 수정돼 촬영 한 달 만에 그녀의 배역은 조연으로 바뀌었다. 주변 상황에 의해 휘청대는 삶에서 허우적거리던 그 무렵, 그녀는 다행히 평생 의지할 수 있을 만큼 흥미로운 레포츠를 만나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


“지인이 스킨스쿠버를 추천해줘서 배우게 됐는데 전혀 다른 세상이었어요. 제가 있어야 할 곳이 방송 세계가 아니라 물속 세계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단순한 취미로 끝났을 법도 하지만 그녀는 2년 6개월 동안 꾸준히 공부해 2015년 ‘PADI 스킨스쿠버 강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인 동시에 스쿠버다이버로 활동하는 그녀에게 붙은 ‘여자 연예인 최초의 스킨스쿠버 강사’란 타이틀보다 더 눈길이 가는 건 그녀가 취득한 자격증 개수다. 강사가 되기 위한 다섯 개의 필수 자격증 외에 수중촬영, 해양생물 등 추가로 취득한 관련 자격증만 무려 스무 개. 뚜렷한 목표를 세워 스스로 이뤄가는 즐거움을 그동안 얼마나 갈망했었는지 고스란히 느껴지는 대목이다. 다이빙을 배우는 동안 자신이 노력한 만큼 결실이 되어 돌아오는 순간들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자존감을 회복하고 활기차게 생활하는 그녀를 볼 수 없었을지 모른다.


“스킨스쿠버는 다시 나답게 살게 해준 고마운 스포츠에요. 저는 성취감을 통해 얻는 즐거움이 큰 사람인데 다이빙이 그걸 충족시켜줬어요. 자격시험에 통과할 때마다 제 스스로가 대견했거든요. 덕분에 자신감을 갖고 다이빙에 임하다보니 제대로 실력을 갖춘 다이버로 성장할 수 있었어요.”


자연을 아끼는 스쿠버다이버


‘그녀는 소년이 너무나 귀여웠다. 그녀가 이전에 느낀 애정 가운데 이보다 깊은 것은 없었다. 지금까지 그녀의 영혼이 이처럼 완전하게 사로잡힌 적은 없었다.’ 스쿠버다이버로서 최송현은 안톤 체호프의 단편소설 <귀여운 여인> 속 올렌카와 꼭 닮았다. 사랑의 대상이 다를 뿐 애정의 깊이는 올렌카보다 더 깊다. 평소 많은 사람과의 모임을 즐기지않는 그녀가 바닷속을 탐험하러 세계 곳곳을 누비며 다이버들과 어울리고, 8년 동안 다이빙에 시간과 재능을 쏟아 붓게 된 이유는 분명하다. 바깥세상으로부터 완전히 차단된 채 바다 속에서 온몸의 감각을 자신에게 모으는 몰입의 행복. 그녀의 영혼이 이토록 바다에 완전하게 사로잡힌 까닭은 아마 수중세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심신의 평온 때문일 것이다.


“바다에 들어가면 몸과 마음의 긴장이 스르르 풀려요. 우주에 둥둥 떠 있는 느낌과 비슷할 거예요. 숨을 들이마시는 만큼 뜨고, 내뱉은 만큼 가라앉으니까 내 호흡에만 집중하게 되고 밖에서 생긴 일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아요. 내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기쁜 순간이라 해야 할까요? 살면서 이렇게까지 순수한 기쁨을 느끼는 순간은 없을 거예요.”



바닷속에서 온전히 자신의 움직임에 몰두하는 그녀의 집중력이 더 높아지는 때는 각종 수중생물들과 마주치는 순간이다. 수초와 조개껍데기로 몸을 치장하는 위장술의 대가 데코레이션크랩, 그녀가 ‘물멍멍이’라는 별명까지 지어준 귀여운 물개, 거대한 지느러미를 쫙 펴고 헤엄치는 자태가 우아해서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만타가오리….


손짓 발짓을 동원해가며 바닷속에서 만난 친구들을 소개하는 모습이 마치 물 만난 물고기처럼 신나 보이는 그녀는 요즘 하나의 생물을 더 집중적으로 관찰하는 재미에 빠져 있다. 어떤 물고기든 시간을 두고 찬찬히 관찰하면 더 깊은 애정이 생겨 자주 한 곳에 멈춰 수중동물과 눈을 맞춘다. 무엇이든 오래 지켜봐야 본연의 매력을 알게 된다는 삶의 지혜도 바다에서 배웠다.


“바다에서는 강한 존재가 약한 존재를 지배하는 법이 없어요. 인간마저도 수중생물들과 그저 나란히 헤엄치며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평등한 존재일 뿐이죠. 사람의 목숨만큼 그들의 목숨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환경오염으로 바다 속 생명들이 고통 받고 있다는 뉴스를 접하면 그래서 유난히 가슴이 아파요.”


수중생물을 아끼는 마음만큼 수중환경에도 관심이 많은 그녀는 해양환경 보호를 가장 중요한 다이빙 철학으로 삼는다. 다이빙에 입문한 시기부터 바다 속 쓰레기를 보는 족족 수거해 나왔던 그녀에게 5년 전 제주 성산 앞바다에서 목격한 현장은 지금도 충격적으로 남아 있다. 자격증 시험을 치르는 지점까지 헤엄쳐 가는 동안 그녀의 진로를 방해한 것은 엄청난 양의 해양 폐기물들이었다. 말 그대로 ‘물 반, 쓰레기 반’인 모습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하며 그녀는 쓰레기를 치우러 꼭 다시 와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몇 달 후 자원봉사할 다이버들을 직접 모집해 성산 앞바다를 다시 찾은 그녀는 바다 속은 물론 해변에 버려진 쓰레기까지 수거한 뒤에야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그동안 틈날 때마다 수중정화 활동을 해왔어요. 올해는 제 유튜브 채널 구독자들과 함께 할 계획이었는데 코로나19로 못하게 돼서 정말 아쉬워요. 유튜브를 운영하는 것도 해양환경 보호의 필요성을 알리려는 목적이 크거든요. 푸른 바다를 더 열심히 가꿔서 나중에는 우리나라 바다의 아름다움을 담은 다큐도 꼭 제작해보고 싶어요.”


다이빙으로 인해 새로운 꿈이 생겼을 만큼 바다를 사랑하게 되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바다가 두렵다. 수중환경은 언제 어떻게 변할지 예측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려움이 있어야 사고의 가능성도 줄어든다는 것을 그녀는 바다를 유영하며 알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직업적인 면에서 아직 삶의 항로를 정확히 정하지 못해 문득 밀려드는 불안감도 전처럼 그녀를 강하게 흔들지는 못한다. 그저 드넓고 거친 인생이란 바다에서 자신의 호흡에 집중하며 차분히 앞을 향해 나아갈 뿐이다. 그러다보면 언젠가 안전하게 여행을 끝마쳤다는 사실만으로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 오리라 믿는다.



글 한재원 기자 사진 이권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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