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의 오리지널리티

뉴 디자이너 인명사전: 엘라 불리Ella Bulley 

 

 


노팅엄 트렌트 대학교에서 패션과 텍스타일을 전공하고 2014년 영국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에서 텍스타일 퓨처학과(현재 머티리얼 퓨처학과로 변경) 석사과정을 마쳤다. 런던에 있는 디자인 뮤지엄의 레지던시 디자이너로 선정됐으며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 밀라노 디자인 위크,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리는 소비재 박람회 텐덴스Tendence와 암비엔테Ambiente, 런던 서머싯 하우스 등에서 작품을 전시했다. ellabulley.com 

 

전 세계가 글로벌화된 시대, 메트로폴리탄 도시에는 다양한 인종이 섞여 살아간다. 큰 도시일수록 기회 역시 다양하다. 가나 출신인 엘라 불리는 그 기회를 크리에이티브로 승화시킨 디자이너다. 특히 그녀의 작품에는 가나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 치열한 리서치가 수반되며, 가나의 문화가 녹아든 작품은 독특한 아이덴티티를 가진다. 불리의 손을 거친 작업은 가나의 것도, 영국의 것도 아닌, 두 가지 정체성이 혼합된 이종의 디자인이다. 트렌드에 휩쓸리지 않고 다양한 재료의 미래적 가능성에 열정을 쏟는 그녀는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를 졸업한 해인 2014년, 영국공예청에서 선정한 ‘주목해야 할 디자인 졸업자’로 이름을 올렸다. 엘라 불리의 첫 작품인 ‘정원 화석Garden Fossils’은 가상의 미래에 기후변화로 멸종된 식물을 박제된 화석에서 발견한다는 시나리오에서 출발했다. 아카이빙된 이 화석들은 디스토피아적인 미래 정원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작품은 2019년 선보인 ‘인터- 패트리아Inter-Patria’다. 런던 디자인 뮤지엄에서 2018년 ‘거주Dwelling’라는 테마로 모집한 레지던시 작가로 선정된 그녀는 고향에 대한 기억의 파편들이 어떻게 기능적인 작품으로 변신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특히 그녀는 디자인을 통해 현대사회에서 유목민적 삶을 살아가는 이주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했다. 생계와 가족, 그리고 꿈을 위해 살아가는 무수히 많은 이주자들이 타지에서 겪는 향수와 불안, 막연한 희망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그녀이기에 할 수 있었던 일이다. 엘라 불리의 작품은 날것의 소재를 가공해서 새로운 사물로 재탄생시키는 과정에 공을 들임으로써 더욱 빛을 발한다. 이 과정은 개인의 경험과 역사적 서사를 가로지르고, 서로 다른 문화를 결합시킨다. 재료가 지닌 가능성과 제작 과정에 대한 내러티브를 함께 담아내는 것도 물론이다. 자신이 어디서 왔으며,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또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아는 이 영리한 디자이너의 탐험과 결과물이 더욱 독창적이라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프로젝트 사카룸
Project Saccharum, 2015 2015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소개한 프로젝트. 설탕의 원료인 사탕수수(사카룸)가 공예품으로 탄생하는 신비로운 과정에 주목했다. 인도에서 사탕수수로 만들어낸 설탕은 일반적으로 꿀을 사용하던 서구에 고가의 감미료로 소개되었지만, 오늘날에는 비만과 당뇨의 주범으로 여겨지면서 기피 대상이 되었다. 불리가 설탕에 주목하는 이유는 평가절하된 설탕이 가공을 거쳐 순수한 공예품으로 재탄생하면서 갖게 되는 가치 때문이다.




예 오 니에닐Ye o Nienil, 2020
가나의 전통 부족은 매년 5월 장마가 시작되기 전 작물을 심으면서 호모우 Homowo 축제를 연다. 기근 뒤에 찾아온 수확과 풍요를 기념하기 위해서다. 여기서 등장하는 접시는 커뮤니티의 중심이 되는 음식의 역할을 탐험하는 도구라 할 수 있다. 가나의 전통 음식인 와크예를 담는 접시에서 영감을 얻은 접시는 엘라 불리가 직접 디자인하고 채색했다. 최근에는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에 대한 애도와 연대의 표시로 블랙과 레드 컬러를 사용하기도 했다.




인터-패트리아Inter-Patria, 2019
‘이주’를 테마로 한 작업으로, 런던 디자인 뮤지엄의 레지던시 프로그램 결과물이다. 디자이너는 도마뱀과 염소 심벌, 전통 의상 컬러 등 가나의 문화적 정체성이 녹아든 각양각색의 타일을 만들었다. 이 타일은 가정용 테이블과 여행용 트렁크에 접목됐다. 또한 후각과 미각을 자극하기 위해 추억을 상기시키는 아로마 향과 낯선 환경에서 마음을 진정시키는 칵테일도 제안됐다.


그곳은 현재 어떤 상황인가?
처음에 사람들은 사회적 격리가 얼마나 이어질지 불확실한 낯선 상황에서 불안감을 호소했다. 몇몇은 좌절했고, 누군가는 힘들어했으며, 어떤 이들은 적응해나갔다. 사람들은 차츰 집 주변을 탐험하면서 근처 공원의 잘 보존된 자연을 재발견하기 시작했다.

가장 최근에 진행한 프로젝트는 무엇인가?
‘예 오 니에닐Ye o Nienil’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인터-패트리아의 연장선상에서 기획했다. 이 작품에서 필수적인 ‘불을 붙이는 과정’은 공정에 들어가는 시간을 절반가량 줄여주기 때문에 무척 중요하다. 그러나 사회적 격리 조치가 이어지면서 작업장에 가지 못해 일정이 연기되고 있다. 그래서 이전에 아이디어만 떠올렸던 설치물과 텍스타일 작업을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 작업을 지속하지 못하는 상황 때문에 많은 계획을 변경해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속으로만 계획했던 뭔가를 할 수 있는 기회 같기도 하다.

비대면 시대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이에 대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코로나19가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기 전 시간이 없어서 못 했거나, 평소 하고 싶었던 작업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미완성의 생각을 탐험하고 개인적 성장을 위한 시간으로 활용했으면 좋겠다. 전 세계가 이렇게 일괄적으로 느려진 적이 이전에 있었던가? 지금의 느려진 시간을 마음껏 누릴 때다. 






[출처] 월간 디자인 Des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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