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이 사람] 음악으로 홀로서기 / Moon(문혜원), 재즈 뮤지션

잠시 어린 조카를 돌본 적이 있다. 아기를 처음 본 것도 아닌데 너무 신기한 마음, 한편으로는 불완전한 세상에서 완전함을 추구하는 인간으로 살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짠한 마음도 들었다. 이 연약하고 아름다운 존재는 태어난 순간부터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인간이 갖춰야 할 최소한의 조건을 학습하기 위해, 자기가 가진 최대의 에너지를 쏟고 있었다. 첫 숨을 들이마시는 고비를 넘긴 후에는 숨을 헐떡이며 먹는 법을 알게 되고, 위태롭게 서기 시작하고, 수없이 넘어지며 걷고, 말을 하게 되며 이제는 제법 세상을 살아가기에 무리 없는 어린이로 자라났다. 살면서 하는 무수히 많은 행위 중 기본에 불과한 이 행동들이 어릴 적 부지불식간에 반복된 실패 속에서 성공한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꽤 자주 잊어버린 채 살아간다.

중학생 시절, 노래하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부모님 곁을 떠나 처음으로 혼자 숨을 쉬고, 혼자 밥을 먹고, 혼자 교복을 다려 입고 학교에 가며 또래와는 다른 청소년기를 보냈다. ‘신체적인 홀로서기’는 태어남과 동시에 시작됐지만, ‘정신적 홀로서기’는 10대 시절에, 말 그대로 혼자 생활하며 시작되었다. 세상에 나와 혼자 모든 것을 하게 된 순간은 누구에게나 있겠지만, 예술 업계 종사자의 그런 삶이란 ‘홀로 있는 시간의 중요성’을 깨닫는 삶이다. 제대로 홀로 서야만 하는 삶. 혼자 있는 시간은 누구보다 외로워하면서도 결국 홀로 그 외로움을 텃밭 삼아 씨앗을 심고, 눈물로 키운 열매를 수확하는 삶.

재즈 보컬리스트로 활동하면서 감사하게도 좋은 연주자들과 10년 가까이 멋진 음악을 하며 팀의 보컬리스트로 설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얻었다. 덕분에 어린 시절 내 모습을 오디오로, 비디오로 남길 수 있었고, 그다음 단계를 밟아갈 자양분이 되었다. 하지만 반짝이는 젊음 뒤에는 무지와 무능으로 점철된 모습도 함께했다. 다만 그때는 몰랐을 뿐. 팀 활동을 정리하며 혼자 생각하면서 솔로 보컬리스트로서의 ‘나’라는 정체성을 되찾아야만 하는 시간과 마주했다. 팀에서 노래하는 나와 혼자인 내 모습의 간극. 이를 좁히는 데 반년이 걸렸다. 뜬구름처럼 흩어진 아이디어가 어느 정도 손에 잡힐 즈음, 첫 솔로 앨범 작업에 들어갔고, 무지는 용감함의 다른 말인 듯 또 한 번 주사위를 던졌다. ‘어디로 걸어갈지도 모르면서 우선 일어서고 보는 아이’처럼, 노래 외의 일들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시작하고 본 것. 

2018년 2월(우리나라에서는 3월) 1집 앨범 <Kiss Me>를 발표하고 나서 한 인터뷰에서 나는 “결국 좋은 음악이 다 해줄 거라 믿는다”라는 아주 순진한 말을 한 적이 있다. 단 한 번도 거짓으로 인터뷰에 응한 적이 없기에 그것도 당시의 내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생각이 보기 좋게 빗나가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활동을 위한 여러 업무는 그동안 잡초라고 생각했던 내가, 잡초이긴 한데 나름 온실 속에서 ‘편안하게 살아온 잡초’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일을 하려면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일들을 해야만 했고, 할 줄 모르는 것투성이라 실수 연발이었다. 솔로 데뷔 후 1년은 나를 정비하는 데 썼다. 나 스스로 “남부끄럽지 않은 앨범”을 만들었다는 자부심이 컸기에 사람들이 몰라주는 것 같아 서운했고, 다시 처음 음악을 시작했던 때로 돌아간 것만 같은 두려움이 나를 괴롭혔다. 그때 들었던 많은 ‘거절’의 말들은 큰 상처로 다가오기도 했다. 

이후 운 좋게도 두 번째 앨범을 제작할 기회를 얻었고, 현실을 직시하며 처음보다 힘을 빼고 내려놓는 마음으로 작업을 했다. 혼자 하다 보니 메일로 소통하고 비행기를 타고 숙소를 찾아가는 일은 어렵진 않았고, 감정을 나누는 언어는 ‘음악’ 뿐인 타국에서 혼자 있는 것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그렇게 만든 2집 <Tenderly> 발표 후에는 약간의 보상처럼 무대가 조금 더 늘어났고, 내 뮤지션들과의 앙상블도 안정적으로 자리 잡아갔다. 그해 11월에는 내 손으로 단독 콘서트를 올려보기까지 했으니 이제 한 걸음 뗀 것 같다. 올해 새해 아침에 세운 목표는 ‘DIY형 뮤지션’이 되는 것이었다. “벌써 늦었지”하는 누군가의 말처럼 어쩌면 남들은 다 하고 있는 걸 이제야 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속도로 살아왔기에 조바심이나 후회는 없다.

뮤지션으로서 나는 내 텃밭의 크기를 가늠하고 씨앗을 뿌리며 홀로서기 중이다. 다만 거절이 남긴 상처를 들여다봐야 하고 한계에 맞닥뜨려야 하며 이를 뛰어넘어 열심히 했음에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 좌절하는 밤을 다시 만나겠지만, 조금 더 자라난 나는 과거의 나와는 다를 것을 확신한다. 앞으로 흘리게 될 눈물은 마음속에 단비로 내려와 달콤한 수확의 기쁨을 맛보게 해줄 것이다. 지금이 홀로서는 중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이상, 그런 감정은 나를 괴롭힐 수 없다는 것을 믿기에.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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