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시계 브랜드와 세계적인 건축물 4

시계의 집  

 

IWC

  

위치 스위스 샤픈하우젠 면적 13,500㎡ 건축가 ATP 아키텍츠 엔지니어스 준공 연도 2018년
 
IWC는 시작부터 여타 스위스 회사와 조금 달랐다. 스위스 시계 브랜드는 대부분 유럽인이 스위스의 프랑스어권 지역에서 창립했다. IWC는 미국인 사업가가 스위스의 독일어권 지역에 세웠다. 그래서인지 IWC는 창립 15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일반적인 스위스 시계에 비해 직선적이고 화려하면서도 실용적인 모습이다. IWC 시계의 특징은 신축 공장 건물에서도 드러난다. 이 지면에 실린 스위스 시계 회사의 건축물 중 IWC만 외관에 곡선이 전혀 없다. 그러면서도 묘하게 장식적이라는 점 역시 IWC 시계를 닮았다.
  

IWC는 2018년 본사가 자리한 샤프하우젠 외곽 지역에 새로운 본사 겸 공장을 건축했다. 스위스의 고급 시계 브랜드들이 경쟁하듯 세계의 유명 건축가를 초빙하는 것과 달리 IWC는 여기서도 내실을 다졌다. IWC 공장을 설계한 취리히의 ATP 아키텍츠 엔지니어스는 스위스 주변의 서유럽 내륙 국가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건축 회사다. 스타 건축가를 내세우지 않는 대신 건축과 함께 엔지니어링 서비스를 제공하고, 건축의 모든 부분을 디지털 데이터베이스화하는 ‘빌딩 인포메이션 모델링’에 특화되어 있다.
그 결과 IWC 공장에서 가장 빛나는 건 특정 건축가가 아닌 IWC라는 브랜드 자체다. IWC는 미스 반데어로에로 대표되는 바우하우스 공간 구성을 공장에 구현하며 자신들의 표현대로 ‘시계의 신전’을 만들어냈다.
  

놀라운 건 이 과정에 IWC의 CEO가 깊이 관여했다는 사실이다.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건축주 수준이 아니다. IWC의 CEO 크리스토프 그레인저헤어는 건축가 출신이다. 그는 본인의 전문성을 내세워 건물의 초반 콘셉트와 디자인을 지휘했다. 결과적으로 아주 멋지면서도 기능적으로 훌륭한 건물이 완성되었다. IWC 건물은 금속 봉을 CNC 머신으로 깎아 케이스와 부품을 생산하는 공정, 무브먼트 조립 공정은 물론 IT 센터와 지원 부서 역할까지 수행한다.
IWC는 시계 공장을 대하는 자세도 남달랐다. CEO 그레인저헤어는 공장 건축 단계에서 유럽의 모든 자동차 공장을 다니며 고객에게 공장을 어떻게 보여주어야 할지 연구했다. 그 결과 이 공장을 찾은 사람들은 시계가 만들어지는 각 과정을 바로 옆에서 볼 수 있다(그렇지 않은 시계 공장도 많다). 이 역시 고도의 계산이다. “우리는 기능적으로 꼭 필요하지 않은 걸 팝니다. 시간을 정확히 알기 위해 제품(기계식 시계)을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우리는 고객의 정체성과 고객의 기쁨을 만드는 겁니다.” 그레인저헤어는 그렇기 때문에 고객이 시계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자세히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당한 말씀. IWC가 잘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VACHERON CONSTANTIN

  

위치 스위스 플랑레와트 면적 10,219㎡ 건축가 베르나르 추미 준공 연도 2005년(2015년 증축)  
 
바쉐론 콘스탄틴은 공장을 두 부분으로 갈랐다. 그 이유를 알려면 스위스 시계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스위스 시계 역시 여느 기계와 마찬가지로 각각의 부품을 조립해 완성한다. 스위스 시계업체는 대부분 제네바 북부에서 50km쯤 떨어진 발레드주 지역에 모여 있다. 아직도 시계의 모든 부품을 손으로 세공하는 바쉐론 콘스탄틴의 부품 공장 역시 이 지역의 라브라수스에 따로 자리 잡고 있다. 이 공장에서 제작과 세공이 끝난 부품은 제네바 공항 근처의 플랑레와트로 이동한다. 이곳에 바쉐론 콘스탄틴의 본사 겸 조립 공장이 있다. 오늘의 주인공은 이 멋들어진 조립 공장이다.
바쉐론 콘스탄틴의 본사 겸 공장 건물은 멀리서 봐도 시선을 끈다. 유리로 이뤄진 외벽 위에 처마와 기둥 역할을 하는 금속 구조물이 얹혀 있는 모양새다. 이 인위적 구조물을 둘러싸고 약 1500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내부 역시 자연재인 나무와 공업재인 유리를 함께 썼다. 눈에는 확 띄지만 기능적으로 모난 구석이 없고, 파격적이다 싶으면서도 균형은 깨지지 않았다. 최고의 멤버로 최고의 전략을 짜는 명문 야구팀 감독처럼 승리만을 추구하는 건축이다. 실제로 이 건물의 건축가인 베르나르 추미는 세계 건축계에서도 엘리트 코스만 밟아온 인물로 꼽힌다.
  

바쉐론 콘스탄틴은 1755년에 탄생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시계 브랜드다. 4세기째 이어지는 회사를 운영하다 보면 시간 개념도 달라지는 걸까? 바쉐론 콘스탄틴은 2001년 플랑레와트의 본사 겸 조립 공장 설계 공모를 시작했다. 공모 결과 베르나르 추미가 선정되고 건축물이 완성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4년이다. 바쉐론 콘스탄틴은 10년 후인 2015년 기존 건물 바로 옆에 건물을 증축했다. 이때의 건축가 역시 베르나르 추미였다. 10년의 시간을 두고 증축해 이은 두 건물 사이에는 어떤 위화감도 없다. 건축가의 노련함과 건축주의 긴 시야 덕분일 것이다.
“우리는 바쉐론 콘스탄틴 측에 두 가지를 물어보았다.” 베르나르 추미와 바쉐론 콘스탄틴이 나눴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첫 번째는 브랜드가 기능적으로, 그리고 정체성 면에서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였다. 두 번째로 우리는 건축 전체의 역사를 포함해 21세기 초반의 건축에 대한 논쟁을 했다. 전통적인 건축 파사드를 점차적으로 대체하는 ‘엔벨로프 콘셉트’에 대해 이야기해야 했다.” 엔벨로프란 건물 외피를 말하는 베르나르 추미식 개념이다. 건축주와 이 정도 토의는 해야 이렇게 인상적인 건물이 나오는 건가 싶다. 

 

AUDEMARS PIGUET


위치 스위스 발레드주 르셰니 면적 900㎡ 건축가 BIG 준공 연도 2020년 
 
오데마 피게 본사는 이 지면에 실린 건물 중 최신이다. 오데마 피게가 자사의 최신 박물관 겸 공방을 공개한 건 불과 얼마 전인 2020년 6월 말이다. 코로나19만 아니었다면 세계 곳곳의 기자와 인플루언서를 불러들여 기사를 릴리즈하며 훨씬 더 큰 화제를 낳았을 테다. 그만큼 충격적인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랜 역사와 전통의 오데마 피게는 크게 아쉬워하지 않았다. 오데마 피게가 어떤 회사인가. 20세기 초 시계 브랜드 시장을 뒤흔든 ‘쿼츠 쇼크’를 당시 개념으로는 말도 안 되게 고급 시계인 로열 오크로 이겨낸 컬트 럭셔리 회사다.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처럼 오데마 피게는 자사의 새로운 건물을 유유히 인터넷으로 공개했다.
이 건물의 특이한 점은 한둘이 아니라서 한 문장으로 줄일 수가 없다. 우선 기능적으로는 박물관인 동시에 공방. 박물관과 공방을 함께 뒀다. 그 발상 자체가 뭐랄까, 오데마 피게적이다. 땅을 파서 구조를 만들고 지붕에는 잔디를 심었다. 주변의 오래된 건물 사이에서 새 건물 티가 하나도 안 난다. 위에서 볼 때 드러나는 이중 나선형 실루엣으로 시계의 스프링 모양을 표현했다. 너무 직설적인 비유지만 뒤편에 있는 본사와 쉽게 연결되고, 내부 동선 역시 박물관 관람객에게도 편리하게 고안했다. 구조적으로는 도발적이게도 기둥과 벽이 없다. 도발의 배후에는 거장이 있다. 구글 캠퍼스와 뉴욕의 투 월드 트레이드 센터를 설계한 것으로 유명한 비야르케 잉엘스의 비야르케 잉엘스 그룹(BIG)이 맡았다.
 

상식 밖의 건축에는 다 이유가 있다. BIG는 처음부터 주변 경관을 방해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디자인을 시작했다. 스위스의 오래된 마을 풍경에 대한 존중이 있었던 셈이다. 그 존중의 과정에서 최대의 시야와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기둥과 벽을 쓰지 않았는데, 그 대신 표면의 유리가 하중을 지탱한다. 유리 위쪽에는 브론즈 메시를 설치해 통유리 바깥쪽 쥐라산맥의 경치를 즐기면서도 햇빛을 가릴 수 있도록 했다. 건물 중심 부분에는 2개의 공방이 자리한다. 초복잡 시계인 그랑 컴플리케이션을 만드는 공방과 보석을 세공하는 메티에 다르의 공방이다. 가장 수익률이 높은 노동자에게 가장 좋은 자리를 준 셈이다.
“시계 제작과 건축은 모두 형식이 콘텐츠예요.” 비야르케 잉엘스는 〈월페이퍼〉와의 인터뷰에서 아주 스마트하게 이 건축의 의미를 설명했다. “시계와 건축의 형식과 내용 사이에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구분이 없습니다. 그 사실이 이 일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오고요. 우리는 동시에 최소한의 재료를 쓰면서 최대한의 효과를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거장은 어려운 걸 해내고 설명은 쉽게 한다. 사진만 봐도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간다. 이 신기한 공간은 아직 예약제로 운영한다.


OMEGA

  

위치 스위스 비엔 면적 25,000㎡ 건축가 반 시게루 준공 연도 2017년 
 
뤼 자콥-스탐플리 96번지, 비엔. 1882년부터 지금까지 변한 적이 없는 오메가 공장 주소다. 오메가는 19세기에 자신들의 고향에서 시작해 풍운의 20세기를 보낸 후 21세기에도 스와치 그룹의 톱 플레이어로 살아남았다. 이들은 스스로의 영광을 자축이라도 하듯 2017년 인상적인 신축 공장을 완공했다. 워낙 대형 브랜드인 만큼 오메가는 시계 생산 공정을 단계별로 나눴다.
T1이 무브먼트 생산, T2가 시계 제작, T3는 브레이슬릿 생산과 조립, T4는 포장 및 배송. T1 단계의 무브먼트 공장은 따로 있고 신축 공장에서는 T2부터 T4까지의 공정이 한 지붕 아래에서 매끄럽게 이루어진다.
21세기의 고급 시계를 만들기 위해 오메가는 귀한 건축가를 모셨다. 2014년 프리츠커상을 받은 일본 건축가 반 시게루다. 그는 고베 대지진 등의 재난 상황에 단가가 낮으면서도 효과적인 구조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지관 건축물을 설계하며 유명해졌다. 반 시게루 건축의 특징 중 하나는 못을 사용하지 않는 동양의 목구조 건축을 활용한다는 점이다. 그는 대담하게도 이렇게 소박한 습관을 세계 수준의 고가 시계 브랜드 오메가에서도 밀어붙였다. 그 결과 건물 내부의 골조는 못을 쓰지 않고 나무로 짠 통나무 프레임이 받치고 있다. 최첨단 유리 외벽 옆으로 옹이가 그대로 드러난 통나무 구조를 보면 신기하다.
  

  

동시에 오메가 공장은 초하이테크 건축물이다. 이 건물의 모든 부분은 극도의 효율과 지속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었다. 대표적 예가 건물 중심의 3층짜리 무인 창고다. 시계 생산에 가장 치명적인 건 먼지이며 시계 공장 건축에서 인간은 먼지 덩어리라는 변수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메가 공장의 무인 창고는 로봇만 들어간다. 4개의 로봇 팔이 2차원 레일을 따라 초속 4m로 상하좌우 움직이며 상자 3만 개 사이에서 부품을 꺼낸다. 로봇만 있는 이 창고는 해수면의 대기보다 산소 농도가 15.2% 낮다. 화재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다.
스위스의 고급 시계 공장 건축은 스위스 시계를 만드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스위스 전통과 첨단 기술을 함께 반영해야 하고, 극단의 효율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만족시켜야 한다. 건축가와 건축주는 이 어려운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 노력했다(건축가는 자연 소재를 쓰고 싶어 했지만). “먼지는 시계 생산의 적이라서 시계 공장에 나무를 쓰는 건 좋지 않아요”라고 〈와이어드〉 기사에서 오메가의 공장 가이드가 말했다. 그러나 나무는 오메가의 환경과 지속 가능성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는 증거다. “프레임을 이룬 나무는 모두 스위스산인데 이건 스위스 경제와 환경에 좋은 일이에요. 스위스에서는 나무를 베면 7시간 안에 새 나무를 심도록 법으로 정해졌거든요.” 가이드가 덧붙인 말이다. 건축주나 건축가나 이들의 나라나 모두 보통이 아니다. 

 



[출처] 에스콰이어 Esquire (한국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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