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문제작가 신작특집 신희수

복 받을 거야 등 5편

38년 초등교사 근무

2019 『에세이스트』 등단

광화문 수필포럼 회원

이메일 : djsh56@hanmail.net

「복 받을 거야」

(...)

우리 집에 오는 사람들마다 “복 받을 거야”라는 말을 했다. 위로로 하는 말인 줄 알았지만 그 말이 참 듣기 싫었다. ‘도대체 무슨 복을 받는다는 거야?’ 그 말은 메아리처럼 귓전을 돌며 나를 더 옥죄었다. 솔직히 나도 어머니가 신경 쓰여서 형님댁에 가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많았다. 두 분은 다 집에 계시면서 왜 일하는 나와 지내게 하는지, 용돈도 드리고, 필요한 물건도 사 드리고, 책임을 져야 하는지 물어보고 싶을 때도 많았다. 우리에게만 어려움을 이야기하시고 해결을 바라는 어머니의 마음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늘 큰 시숙님만 챙기는 어머니가 얄미울 때도 많았다. “막내가 잘하죠?”라는 물음엔 늘 “지나 봐야 알지”라고 답하던 어머니의 말씀에 서운한 적도 많았다. 좋아하는 꼬막을 사서 드리면 “때가 아니다”라고 면박을 주거나 늘 고기반찬을 찾는 말씀에 언짢은 적도 많았다. 칭찬에 인색하면서, 나의 일거수일투족에 반응을 보이는 어머니의 행동에 도망치고 싶을 때도 많았다. 게다가 치매로 우리 가정의 일이 와전되어 전국에 있는 친척들에게 중계될 때는 난감했다. 선거철도 아닌데 남편을 구청장으로 소문을 낸 탓에 그걸 무마하느라 진땀을 빼기도 했다. 그런 내가 무슨 복을 받는다고.

치매가 심해지면서 나는 어머니의 새엄마가 되고 몸종도 되었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신 어머니와 상황극을 하며 지냈다. 그런데 다른 것은 다 해도 온 집을 대변으로 발라놓는 것은 견디기 힘들었다. 친정엄마는 할아버지의 대소변을 다 받아내며 시중을 들었는데…. 결국 병원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노인요양보험이 준비되던 때여서 병원비 부담이 컸다. 그러면서 또 어머니에게 무심한 형님들이 야속했다. 차라리 내가 맏이거나 외동이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을 텐데. 막내다 보니 형님들 눈치까지 살펴야 하니 부담은 더해졌다.

「왕십리에 집을 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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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집에서 돌봐드리기에는 한계를 느껴 병원에 모셨다. 당시 몸이 좋지 않던 나도 입원을 해서 힘겨운 투병 생활을 하는 바람에 서로 다른 병원에 있는 두 여자를 살피느라 가족들의 고생이 매우 컸다. 그러다가 내가 퇴원하고 한 달이 되었을 때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자존심이 강하여 결코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던 어머니가 병원 침대에 누운 지 6개월 만에 한 많은 삶을 내려놓으신 것이다.

어머니께서는 한국전쟁으로 남편과 재산을 모두 잃고, 사는 집도 빼앗기며 고초를 겪으셨다. 그래서 1·4후퇴 때 어린 아들 셋과 기차 지붕에 올라타 시골로 내려가셨다. 몸종을 데리고 시집을 가셨던 어머니는 살림할 줄 몰랐다. 부잣집 귀한 공주로 자라서 도움만 받고 살다가, 전쟁으로 인해 느닷없이 젖먹이 아들까지 4명이 먹고 살아야 했다. 오로지 할 줄 아는 바느질로 입에 풀칠하며 살다가 아이들 교육에 대한 열의로 서울로 다시 올라왔다. 그때 터를 잡은 곳이 집값이 싼 왕십리 산동네 무허가촌이었다. 하지만 그곳도 안식처가 되지 못했다. 집주인의 횡포와 큰 폭으로 오른 전·월세 가격 때문에 더 외곽으로 밀려나서 살아야 했다.

서울에 올라와 처음 정착했던 곳에 대한 추억과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보낸 왕십리에 대한 미련이 남았을까. 혹은 마음속 깊이 간직했던 눈물로 지낸 왕십리의 생활을 떠올렸을까. 아니면 집 없이 살았던 설움을 대신 갚아주길 바라셨을까. 무의식중에 내뱉은 그 말씀에 생각이 여러 갈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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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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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집안일을 잘하지 못하는 여인이었다. 시집갈 때도 몸종을 데리고 가신 어머니는 어릴 때부터 계속 도움을 받고 살아서 집안일이 서툴렀다. 큰아들이 커서 장가를 간 이후엔 바로 살림을 내려놓으셨다. 우리 집에 아이들 어릴 때 돌봐주신다고 오셨지만 아이들 먹을 것을 손수 만들어 주는 것을 보기 어려웠다. 맞벌이로 힘들게 출퇴근하는 나는 집안일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혼자된 어머니가 바느질하며 세 아들을 키울 때 익숙하지 않은 집안일이 참 버거웠을 것 같았다. 고교졸업 때까지 할머니와 함께 방을 사용한 딸은 정리에 서툰 할머니를 많이 닮았다. 그런데 자신이 입으실 옷은 항상 스스로 만지셨다. 주로 한복을 입으셨는데 대부분 스스로 지으셨다. 멋지게 만들어서 잘 다려 입고 나서면 품위 있고 귀하게 보였다. 특히 여름에 한산 모시로 멋진 한복을 지어 입고 다니면 사람들이 다 한 번씩 쳐다볼 정도였다. 다리미로 곱게 다린 하얀 모시옷은 주변을 환히 밝혔다. 입었던 옷들이 조금이라도 상처가 나거나 해지면 다소곳이 앉아서 손질하시곤 했다. 그러면서 내가 바늘을 들기만 하면 달라고 하여 바로 도움을 주셨다. 살림살이 중에 어머니께서 유일하게 자신 있어 하던 게 바로 바느질이었다. 바느질이 생계가 되어서 그런지 몸에 익어서 어떤 상황에서도 바늘귀를 끼우는 일은 능숙하게 해결하셨다.

“얘, 너는 그것도 못 하냐? 이리 줘 봐라.”

바늘을 잡고 쩔쩔맬 때마다 하시는 말씀이셨다.

“어머닌 보이지도 않는 바늘귀를 이렇게 잘 꿰세요?”

나는 어머니의 능숙한 솜씨가 감탄스러울 뿐이었다.

“세상 쉬운 것이 바늘귀 끼우는 것인데, 젊은 애가 참 답답하다.”

(...)

「어른아이」

(...)

15년쯤 지난 후 4교시 끝날 무렵 학교로 누가 찾아왔다. 검은 피부, 빠글거리는 머리와 커다란 눈이 동남아인 같았다.

“잘 지내셨어요? 저 철수입니다.”

꾸벅 인사를 하였다. 이름을 듣는 순간 깜짝 놀랐다.

“어떻게 나를 찾았니? 너는 뭘 하며 살고 있니?”

속사포처럼 질문을 쏟아냈다.

“교육청에 가서 물어봤어요” 하며 내가 하교지도를 하는 동안 교실 청소를 해 놓겠다고 했다. 머리 쓰는 것은 못 해도 몸을 쓰는 것은 할 수 있다면서.

그는 인쇄소에서 일하고 있었다. 읽을 수는 없어도 똑같은 모양을 찾는 방법으로 일한다고 했다. 다행히 숫자는 읽을 수 있어서 급여를 통장으로 받고 현금인출기에서 현금을 뽑아 사용한다고 했다. 난 철수가 특수교육 대상자로 사회의 돌봄이 필요한 아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한 그도 나름대로 사는 방법을 터득해서 독립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를 만난 후 난 내가 만나는 아이들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내가 만나는 아이들은 아무리 모자라도 그보다는 나은 아이들이었으니까. 나는 아이들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해준 그가 고마웠다.

연필을 주고 이름을 쓰라고 했더니 예전에 내가 가르쳐 준 그 자세 그대로 썼다. 글씨나 글자에 대한 능력도 예전 그대로 멈추어 있었다. 그런데 적어 준 주소로 우리 집을 찾아왔다. 읽을 줄 모르는데 어떻게 먼 길을 찾아왔는지 신기하기만 했다.

그는 나를 따라 우리 교회로 왔다. 그때부터 우리 부부는 철수의 엄마아빠가 되었다. 난 주일마다 그를 붙잡고 한글 공부를 했다. 1학년 아이들을 지도할 때 쓰는 자료를 가져다가 주일마다 만났다. 철수도 의욕을 갖고 따랐지만 발전이 거의 없었다. 결국 2년 정도 하다 서로 포기했다. 그는 날마다 나에게 전화를 했다.(...)

「다시 날 수 있을까」

(...)

비싼 카메라를 사서 만지작거리는 기간이 얼마 되지 않아 디지털카메라가 등장하였다. 필름 값, 인화 값도 안 들고, 찍으면서 정리까지 가능한 카메라를 보는 순간 조작이 어려운 수동카메라를 산 것이 후회되었다. 나도 작은 디지털카메라로 아이들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사진작가의 꿈은 너무 빨리 막을 내렸고 고급 장비는 장롱 안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돼지에게 진주목걸이가 된 셈이다. 같은 시기에 카메라 공부를 시작한 친구는 사진작가가 되어 지금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아쉬워하는 나에게 아들은 “엄마! 그 카메라는 중고도 값이 괜찮다던데, 내가 알아볼까?” 하며 위로인지 약을 올리는 것인지 모를 애매한 웃음을 흘리며 바라본다.

그래도 그때는 무언가를 하고 싶고 해보려는 마음이 있었다. 빨빨거리며 이것저것 도전해 보는 것을 즐겼다. 하지만 퇴직 후엔 집과 병원만을 오가는 나는 하루하루 무사히 지내는 것만이 일이었다. 지금은 새로운 삶이 있어 감사하지만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너무 적어 바보가 된 기분이다. 꿈이나 미래라는 단어가 멀게만 느껴지고 자꾸 위축되는 나를 본다. 여러 번의 수술로 걷는 것도 시원찮고 쉽게 피곤해져서 활동이 자유롭지 못하다. 또 항상 먹어야 하는 약의 부작용으로 손 떨림이 심해 물건을 잘 잡지 못하고 칼질이나 글씨 쓰는 것도 불편하다. 사진을 찍는 것은 포기한 지 오래다.

“엄마! 일반인 모델을 찾는다고 해서 내가 엄마 사진을 보냈더니 연락이 오네. 어쩌면 광고 찍을지도 몰라. 기대해봐. 히히”

얼마 전 딸이 웃으며 말했다.

“정말? 머리는 하얗고 키도 작고 예쁘지도 않는데 누가 나를 부르겠니?”

그러면서도 은근 싫지는 않다.

“어떤 사진 보냈어? 제대로 찍은 사진도 없는데….”

“그냥 나한테 있는 것 몇 장 보냈어. 다른 사람들은 보정이 된 사진인데 엄마는 그냥 찍은 거라 순수해서 좋대.”

몇몇 광고에서 캐스팅 제의가 들어왔다. 물론 메인을 돕는 보조출연자 역할이다. 경험이 없는데 어떡하지? 하면서도 내심 들떴다. 아파서 일찍 퇴직하고 시간을 보내며 살아가는데 나에게 새로운 꿈이 생긴 것 같았다. 그중 아이와 찍는 광고가 성사되어 미팅 날짜와 장소가 사전에 정해졌다. (...)

「작가노트」

내 몸을 돌볼 사이 없이 바삐 살던 30대 후반에 만성신부전증을 진단받았습니다. 병원 도움을 받으면서 잘 관리하며 지냈는데 50대 후반에 급격히 악화되어 조기퇴직을 하였습니다. 투석을 하며 병원과 집만 오가는 동안 나의 삶은 모두 부정당하는 것 같았습니다. 38년을 초등교사로 바쁘게 살았지만 생명이 오고 가는 세 번의 수술과 잦은 입·퇴원으로 병원과 친숙하게 되면서 무기력해진 나의 모습은 한없이 낭떠러지로 빠져드는 느낌이었습니다. 약과 침대에 익숙해져 아주 단순화된 일상으로 외부와 단절된 채 고립된 삶을 살게 되면서 의도적으로 기억을 지웠습니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방구석에 가두었습니다. 이렇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어 한없이 위축되고 있을 때 에세이스트를 만났고 방문을 열고 나오는 계기가 되어주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