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난 手作] 매듭, 시간의 끈 / 박선경, 매듭장 전수교육 교수

끈기와 인내심, 그리고 애정 없이는 맺을 수 없는 것이 매듭이다. 하나의 매듭을 완성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손끝과 마음 승부가 필요한지. 본격적으로 매듭 일에 뛰어든 스무 살 시점, 나에게 그것은 결심이 아니라 운명, 숙명 그런 것이었다. 격동의 역사 속에서 잦은 소멸의 위기를 겪어온 매듭의 매력은 외할아버지에게 닿았고, 4대의 역사는 그곳에서 시작되어 외할머니에게, 다시 어머니에게, 그리고 나에게로 이어지고 있다. 

할아버지(국가무형문화재 제22호 매듭장 정연수)는 구한말에 태어나 일제강점기, 전란의 혼란기에도 단절의 위기에 처한 매듭의 기예를 온전히 이어주었다. 어려운 시절, 할아버지가 놓지 않았던 끈은 상여유소나 인로왕번유소 등 죽은 이의 넋을 위로하는 매듭이었다. 할아버지는 시대의 고단함 속에서도 격식과 장엄으로 예를 갖추고자 했던 선조들의 삶과 애환을 매듭에 담아냈다. 할머니(매듭장 정연수)는 남편의 길을 따라 자식을 위해 실을 삶고 염색하고 매듭을 지으며 한평생을 보냈다. 매듭이 한창 유행이던 1980년대 전후, 장식과 꾸밈에 필요한 매듭의 쓰임새가 많아지면서 벽걸이유소나 장롱걸이, 노리개 등, 살아있는 자의 행복을 위한 매듭을 지었다. 

어머니(매듭장 정봉섭)는 어린 시절부터 매듭 일을 시중들고 잔심부름을 하며 매듭을 눈과 손으로 익혔다. 욕심 없이 가업에 충실했던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탁월한 기량과 장인으로서 갖춰야 할 은근과 끈기를 물려받았다. 어머니의 매듭은 시대 생활상의 변화에 따라 유소보다는 소품의 장신구인 노리개에 집중되었다. 작업이 더욱 섬세하고 정교해졌고, 색감과의 조화를 통해 시대의 미의식을 보여준다. 어머니는 선대와 후대를 잇는 백 년 가업의 중심에서 매듭의 끈을 지금까지도 이어주고 있다. 나 역시 어릴 적부터 매듭 일을 보고 듣고 자랐기에 전혀 낯설지 않았다. 매듭의 전통적인 제작과정은 복잡하고 다양하다. 염색하고, 풀고, 합사하고, 연사하고, 매듭하고 등등, 진한 노동의 결과로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일은 매우 힘들고 고단한 과정이다. 그러나 나는 이를 통해 삶을 살아내는 방법을 터득했다. 매듭을 완성하기까지의 과정 하나하나에 정성을 들여야만 아름답고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오는 법. 삶이 그렇듯이.

아주 오래전부터 매듭은 주체를 돋보이는 조연으로서의 역할만을 해왔다. 그러나 내 작업에서만큼은 조연의 역할에 갇히지 않게 하고 싶다. 매듭이 이 시대를 담아내고 어느 곳에서든 아름답고 쓰임새 있게 빛을 발할 수 있다면…. 최근 신예선 섬유작가와 협업한 유리 작업은 할아버지의 작업에서 영감을 얻은 ‘온전히 매듭만을 위한’ 것이었다. 전통기법과 명주실을 이용해 투명한 유리 볼 위에서 온전히 매듭의 자태만을 드러내 오너먼트와 장신구로서 빛을 발했다. 새로운 시도는 늘 설레고 반갑다. 시대와 소통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선대의 매듭 이야기를 오늘에 담아낼 수 있어서. 옛것이 점점 더 줄어드는 추세에 전통공예의 입지는 위태롭다. 그러나 오늘도 나는 일상이 된 매듭 일을 즐기고 있다. 묵묵히 이 길을 걸어오신 선대의 의지를 물려받아 시대를 담아낼 매듭을 맺기 위해 기꺼이 고뇌를 즐긴다. 

어릴 적 집 앞 막다른 골목에서 할아버지가 늘어뜨린 실을 넘나들며 고무줄놀이를 했던 기억이 있다. 실이 걸려 헝클어져도 할아버지는 나무라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늘 할아버지가 법 없이도 사실 분이라고 했다. 아마도 매듭 일을 법으로 알고 사셨나 보다. 할머니는 늘 일만 하시는 분이었다. 마당 가득 큰 대야에 실을 담가두고 연탄불 위에 얹은 큰 솥에 면실을 삶아 꺼내 방망이로 한참을 두들기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매듭 일에 집안일에 잔치며 제사는 왜 그렇게 많았는지. 6.25 때 매듭 일이 없었을 때는 바느질 솜씨가 좋아 삵 바느질로 사셨다고 한다. 두 분은 가끔 나에게 막걸리를 받아오라고 하셨는데, 막걸리 한 잔에 그 힘든 매듭 일의 고단함을 푸셨나 보다. 

할아버지의 매듭의 끈은 할머니를 통해 어머니에게, 다시 우리에게 이어지고 있다. 우리에게 매듭은 우연이 아닌 숙명의 업이다. 시절을 탓하지 않고 이 일을 이어오신 할아버지, 할머니를 기억하며 100년 가업의 끈을 놓지 않고 이어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망해본다.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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