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후, 너와 나의 연결고리

1년 중 가장 풍요로운 날로 꼽히는 추석. 오랜만에 보는 가족과 친지들이 모여 반갑고 즐거운 시간이지만 명절이 달갑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아내나 남편이나 명절을 잘 보내고 싶은 마음은 같은데 왜 우린 이렇게 혈투를 벌여야만 할까?



아내, 나 너무 서운하다 

싸움의 이유는 결국 이해의 차이다. 늘 하는 집안일이지만 명절엔 어쩐지 더 서럽다. 명절 전후로 집안일이 폭발적으로 늘어나지만 언제나 하는 사람만 한다는 게 문제다. 평소에 조금만 도와줬어도 이렇게 섭섭하진 않을 텐데 평소 한 번도 도와주지 않던 사람이 가족들 앞에서 면박을 주고 더 잘하라며 잔소리를 하니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다. 친정엄마 앞에서 철없는 딸처럼 어리광도 부리고 싶은데 친정집에 갈 때마다 길이 멀다고 투덜대는 남편이 야속하다. 평소 마음속에 내재해 있던 불만이 숙성되고 곪아 명절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부풀어 올라 터져버린다. 명절이 도화선이 됐다.


남편, 나도 할 말 있다 

한국 남자들은 OECD가 인정한 일벌레들이다. 회사일로 파김치가 되어 돌아오는 것은 예삿일이다. 명절에는 남자도 쉬고 싶다. 침대에 한없이 싶은 마음을 다잡고 몸을 일으켜 평소보다 몇 시간이나 더 걸리는 도로 위에 차를 올린다. 오랜만에 보는 가족들을 보러 가는 길은 녹록지 않지만 결국 챙기는 건 남편이다. 더구나 오랜만에 고향집에 왔어도 아내 눈치보랴, 어머니 눈치에 한시도 편히 있질 못한다. 그러고 나서 장모님 댁으로 발을 옮긴다. 여기도 여전히 불편한 게 가시방석 위에 앉은 기분이다.


아이, 명절에 더 불안하다 

명절에 불이 붙었지만 싸움의 진짜 시작은 그전부터였다. 엄마·아빠 사이에 흐르는 어색한 기류를 느낀 아이는 불안하다. 아이는 부모의 감정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부터 몇 시간째 계속되는 불편한 기운은 아이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때문에 엉뚱한 행동을 하거나 천방지축처럼 굴기도 한다. 엄마·아빠의 관계가 그대로 아이의 내적 심리 상태가 된다. 명절 이후로도 이런 분위기가 계속된다면, 아이는 집중력을 잃어 어떤 것에도 집중하기가 힘들어진다. 에너지가 흐트러지기 때문에 자기 성장이 늦어진다.

부부 소통 전문가, 해결책은 생각보다 가까운 데 있다
명절에 싸우게 되는 이유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미리 예상을 하기 때문이다. 명절에 일어날 일들을 생각하며 ‘이렇게 되면 어떡하지’ ‘이렇게 될 게 뻔해’ ‘두고 보자. 이렇게 되면 난 이런 행동을 취할 테야’라는 식으로 마음을 다진다. 그 생각에만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예상한 일이 일어나면 반발심이 더 커지는 것이다.
부부싸움을 예방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이해’다. 상대가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나도 생각해야 한다. 명절을 앞두고 부부가 소통하는 것은 중요하다. 함께 이야기하고 공감하면서 상대의 기분을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더 중요한 것은 그에 따른 행동이다.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소통 전문가 남동우 소장은 명절 전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부부끼리 충분히 이야기하라고 조언한다. 불확실성은 예상치 못했기 때문에 충격이 더 크다. 그리고 실제로 명절에 미리 얘기를 나눴던 상황이 발생하면 부부가 논의했던 대로 진행한다. 그렇게 해서 일이 잘 넘어갔을 경우 반대로 부부의 친밀도가 높아지고 자존감이 고취된다.

전문가가 말하는 부부 싸움의 기술
아내는 서운한 게 많은가 봅니다. 명절에 어머니가 해주신 음식이 맛있어서 엄청 많이 먹었는데 그것 때문에 삐졌더라고요. 자기가 해준 음식은 맛이 없냐부터 시작해 나중에는 결혼 전에 섭섭했던 일까지 꺼내더라니까요.
expert’s say
문제점, 본론만 얘기하세요. 싸움이 길어지면 나도 모르게 핵심을 벗어난 이야기를 하게 되는 일이 많습니다. 지난 일을 끄집어낸다고 해결되는 건 아닙니다. 그러므로, 현 상황에 대해 문제의 발단이 무엇인지 본론만 간단하고 명확하게 얘기해야 상대도 훨씬 이해가 빠릅니다.

우리 부부는 명절을 각자의 본가로 가서 지낸지 3년째입니다. 3년 전 추석 전날 시댁을 찾아가다가 길을 헤맸고 일정이 꼬여 친정에는 못갔죠. 저는 내내 ‘당신 때문’이라며 잔소리를 했어요. 결국 남편도 참지 못하고 화를 냈고 우리는 냉전 상태에 돌입했어요.
expert’s say
당신 때문이 아니라 '내 의견은 이래'라고 시작하세요. 상대방에게 하는 비난과 욕설 등, 명령은 부부싸움을 크게 키웁니다. 따라서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하기보다 자신의 생각, 의견을 분명히 말해야 합니다. 또한 지난 일에 대해서는 집착하지 않고 단순하게 생각을 덜어내야 합니다.